원장님 칼럼

사건 중심 구약 성서 해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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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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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류 최초의 범죄 사건

 
2) 실낙원 사건의 핵심적 교훈 (창3:1-24) (1)
 
우리는 앞(13회 해설)에서 실락원 사건이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네 가지 교훈 가운데 마지막 두 가지, 즉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의 성품(본성)을 지니신 하나님이 시기에 반드시 공의의 심판 이후에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복락원을 기약하신다는 것과, 마귀를 이기기 힘든 인간이 간교한 마귀의 시험과 공격을 격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락원을 누리는 길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구원의 약속을 겸손히 믿고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강조한바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죄에 대한 공의의 심판과 아울러 동시에 보여 주신 두 가지 사랑의 손길, 즉 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두 사람에게 입혀 주셨다는 것과, 미래에 태어날 여인(하와)의 후손(한 남자/메시야)을 기약하셨다는 것 외에도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신 극단의 조치도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였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죄의식에 수반되는 수치와 절망과 두려움과 비굴함 가운데서 마귀의 종과 죄인의 신분(Identity)을 지닌 채로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영생할 경우에 그보다 더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무기징역을 언도받은 죄수보다 가혹한, 죄수의 복장을 입고 영원토록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비극적 삶이 되기 때문이며, 두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불행한 인생을 살게 할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어둠과 죄악이 지배하는 에덴 동산을 떠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장차 메시야의 도래를 통하여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복락원을 약속하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계 22:2,19).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내려오신 사건의 배후에는 인간의 철천지 원수인 마귀/사탄을 처형하심으로써 더이상 인간이 마귀의 종/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려는 사랑의 동기가 들어있다. 즉 하나님 자신 또는 그의 아들예수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내려오시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은, 인간에게 죄를 짓게하여 탈취한 마귀의 사망권세(롬 6:23)를 빼앗고 사망의 포로가 된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조치였던 것이다. 마귀의 사망권세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죄 없는 의인(독생자 예수/벧전 3:18; 요일 2:1)의 부활사건이 있어야 했고, 부활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죽는 일이 있어야 했으며,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피흘려 죽기 위해서는(히 9:22) 필연적으로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로 세상에 오셔야 했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7천억?)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역사상 가장 참혹한 죄수가 당했던 십자가의 처형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뒤에 두고 있는 21세기의 현대인에게 있어서 복락원을 경험하는 길, 즉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를 받아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마귀의 궤계를 벗어나 흉악한 죽음/사망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본래의 낙원에 들어가는 길은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정하고 그분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세주로 믿는 길 밖에 없다(요 1:12; 3:16; 계 3:20). 이 믿음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믿고, 그분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써 내가 지불해야 할 죄 값을 완전히 지불하셨고, 그분께서 내가 죽어야 할 죽음(사망)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인간에게 본래 약속된 영생을 회복시키셨으며, 특히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마귀가 쥐고 있었던 사망(죽음) 권세를 빼앗으셨을 뿐만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딤후 4:1) 최고 권세를 갖고 계신 만왕의 왕, 만주(萬主)의 주가 되심을 내가 믿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을 믿고 존경하고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 받아(엡 5:1)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 곧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보다 더 존중하여 자신을 생명을 바쳐 사랑했던 이웃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통하여 그분을 증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의 공로를 부인하고 거절하는 자에게 복락원의 길은 막혀있다. 이와 관련된 예화 하나를 인용해 본다.
 
스위스의 한 마을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관광버스가 승객을 가득 태운 채 산길을 내려오던 중 버스 브레이크가 파열됐다. 승객들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운전사는 승객들을 안심시키며 사력을 다해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에 진입하는 마지막 언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곳에서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놀고 있었다. 운전사는 경적을 울리며 계속 신호를 보냈으나 어린이들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운전사는 망설였다. 어린이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승객을 구할 것인가. 운전사는 그만 어린이(하나)를 치고 말았다. 차에서 내린 운전사가 어린이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어린이는 죽어 있었다. 운전사는 어린이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운전사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당신은 어린이를 죽인 살인자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군중을 향해 외쳤다. 운전사를 욕하지 마세요. 저 아이는 운전사의 외아들입니다.(1999년 3월 5일, 인터넷 ‘겨자씨’에 게재된 글에서 인용) <계속>
 
 
장영일 목사
구약학 Ph. D.
성령사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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