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칼럼

사건 중심 구약 성서 해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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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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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 

 

2) 최초의 살인사건이 가르치는 교훈
(창 4:1-12)
 
앞의 글에서 우리는 실낙원의 비극에 이어서 발생한 또다른 비극적 사건, 즉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난 아담의 가정에 있었던 형제살인(Fratricide) 사건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풍요와 평안, 온전한 사랑과 기쁨,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찼던 에덴 동산에서의 삶이 에덴 동산 밖으로 쫓겨나는 것과 아울러 자신의 가정에서 태어난 두 아들 사이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생지옥으로 바뀐 것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해당하고, 마치 아픈 상처 위에 초를 부었을 때 느끼는 아픔처럼, 아담과 하와가 느껴야 하는 고통과 슬품과 절망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점진적으로 가중되는 인간 비극의 실마리(clue)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인간 본래의 완전한 평안과 행복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현대인의 사회적 삶에 비극을 초래하는 암적 요소로서의 인간 내면의 끝없는 미움과 질투와 살인적 성품, 더 나아가서는 현대인의 삶의 가장 큰 장애 요소인 인간 혐오증과 대인 기피증, 더 본질적으로는 생각과 풍습에 있어서 자기 자신과 차이가 있는 사람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게 되는, 이 모든 악마적 습성의 근원은 무엇인가?  세 살짜리 어린 손녀에게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자기보다 더 사랑받는 예쁜 동생을 질투하고 미워하고 못살게 구는 습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성경이 가르치는바, 그와 같은 부정적 요소들을 극복하고 인간 고유의 온유 겸손한 모습으로 치유되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의 글에서 이미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원인이 질투와 미움이었다는 사실과, 더 근원적으로 그 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예배)의 차이에서 형제 살인이 초래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사이의 모든 전쟁은 (예배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종교적인 전쟁이었다”는 어느 철학 교수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 시대의 국가들과 개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전쟁과 싸움과 갈등은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와 사상과 이념(Ideology)의 차이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모든 인간의 행동은 생각(사상/이념)의 표현이라 할 수 있고, 이와 같은 인간의 생각은 종교적 신념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결국 그가 신적 존재(하나님)를 믿는가의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신적 존재를 어떻게 예배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생각과 행동과 습성의 차이에서 미움과 질투와 혐오감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아벨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고, 그분의 뜻과 약속대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대속적 죽음을 바라보면서) 흠없는 어린 양을 제물로 태워 드림으로써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와는 반대로 가인은 양의 피가 있는 제사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 생각대로 곡물(인간의 공로)을 봉헌함으로써 죄용서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하려 시도하였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거부하셨고, 그로 인하여 그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지 않는 인간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동생 아벨에 대한 가인의 살인적 질투와 혐오와 경쟁 의식은 근본적으로 이처럼 서로 다른 예배 행위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 가인이 생각한 아벨의 모습은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가족/동생이 아닌, 그리고 존귀하게 여겨야 할 ‘하나님의 형상’도 아닌, 하나의 자연의 일부요 (공산주의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인간을 존귀히 여겨 온 천하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마 16:26),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음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서 사랑의 하나님의 짝꿍(애인) 되기에 손색없는, 피조물 중에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의미하는데, 이와같은 인간에 대한 인식을 가인은 잊었거나 거부했음이 분명하다.
 
가인은 자기 동생을 다른 짐승이나 물질처럼 하찮은 존재로 간주하였고, 마치 자기가 창조주인 것처럼 착각하여 동생을 없애기 위해 (석기시대의 무기인 돌로?) 쳐죽였던 것이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천하보다 소중한 한 생명을 죽였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위하여 창조된, 하나님의 생명같은 애인을 죽이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수천년 뒤에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보내주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고난을 받고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게 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모든 인간의 생명 하나 하나를 예수님의 생명보다(처럼) 소중히 여기셨음이 입증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 마음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원죄에서 비롯된 인간 혐오증과 인간 기피증과 살인적 욕구들을 치료하는 지름길은 하나님께 나아가 아벨처럼 어린 양의 피를 봉헌하면서 자신의 (원죄에서 비롯된) 과거의 미움과 살인 등의 처참한 죄악상을 고백하여 용서를 받고,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이 함께 주님의 보혈로 용서받은 죄인이요, 자기 자신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애인이요,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 한 가족을 이루어 서로 존경하고 행복을 누릴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 자매라는 생각으로 이웃을 바라보게 될 때, 비로소 미움과 질투와 분쟁은 사라지고,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실현될 것이다. <계속>
 
 
장영일 목사
구약학 Ph. D.
성령사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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